앞서 말했지만, 어제 김천시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반은 자의였고... 반은 타의였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먼저 '타의'.
예전에 있었던 곳은 나에게 있어서는 처음 발령지였다. 3수 끝에 합격하고도 "군대나 가라."는 말에 실망해서 6개월을 방랑자처럼 살았던 나였지만 그렇다 해도 기대가 상당히 컸다. 일단 발령만 받는다면 과거의 모든 기억들은 다 쓸어담겨 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지금 생각하면은 바보의 생각이었다.
왜? 처음 받았던 보직 자체가 문제였다. 아니, 보직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 곳의 구성원들은 나의 보직에 해당되는 시간을 '
노는 시간'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기에다 문제는 직장 내에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대구 본가에서 보내는 수많은 반찬들이었다. 6개월 후에 입대할 나에게는 그걸 모두 해결하기는 벅찼고, 내 사고로는 모두 먹어치워야 했다. 덕분에 살은 엄청 찌게되었고....
여튼 2012년 3월 5일에 나는 입대를 했다. 전역하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면서... 기는 무슨.
휴가를 올 때마다 꼭 날 먹이고 가야겠다는 본가의 필사적인(?) 의지 때문에 질려 버렸다. 이 때 난 눈치챘어야 했다. 거기다 군대에서도 주특기를 전혀 못했던 상황이라 암울했고.
그리하여 전역 직전 원 직장에서 받을 보직에 대해 물어봤더니 입대 전과 그대로였다.
그래도 내 생각은, '2년이 지났는데 바뀌지 않았을까?'였다.
역시 그것도 바보의 생각.
2년 전보다도 더 악화되었던 것이었다.
'가지고 있는 체계로 해야 할 것을 하자.'라고 생각했지만 두 달이 지난 후에 그것은 여전히 노는 것밖에 모르는 구성원들 때문에 헛된 망상에 그치고 말았다. 무엇을 해보려 해도 '우리는 해 봤다.', '너무 쉬워서 지겹다.'라고 계속 그러고 몸 쓰는 것이 아니면 무조건 싫어하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만 하니까 대체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좋아하는 것만 계속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했다. 거기다 슈스케를 표절한 건지(절대 슈스케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슈스케 시즌 4 당시에 대기실로 우리 사무실을 지원했던 경험자로써 말이다(2013년이었으니 당연히 입대 중이었고 그 당시는 상병이었다.).) 악악대는 것밖에 안할 뿐더러 대놓고 불만을 내놓으니까 지치기 싫어도 지쳐버린 상황이었다.
더 열받는 건, 그런 구성원들 때문에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 눈치를 엄청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결과로써 나온 건 난 형편없는 놈이자 무능력자였고, 각을 떠도 시원찮을 '잉여인간'이었다. 그것도 타의로.
내가 좀 더 방법을 개선하고 다가가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고? 노력하면 다 된다고? 뭘 해도 싫다고 하고 새로운 걸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대체 뭘? SDI가 출동했다 하더라도 뭐든 벽을 쌓아버리는데 어떻게 해 드리란 소리인가??
진사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2013년부터 서서히 재개한 것이지만-내가 출사자의 길을 걷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는데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카메라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파인픽스가 바보였다는 걸 깨달은 뒤로는 헬게이트 그 자체였지만, 난 사람을 보는 게 좋았다. 그것도 나와 '맞는 사람'들을.
'맞는 사람'이라는 말에 굳이 따옴표를 붙인 건, 직장 내에서도 있지만 본가와도 최악이었다. 전역을 하고 난 후에 나에 대한 시선은 더더욱 엄격해졌다. 마치 군대를 현역으로 갔다 온 게 평생 잘해야 하는 하인인 양!!(참고로, 내 형은 현역 안나왔다. 그냥 '보충역 아닌 보충역'이라고 해두자.) 대체 반찬을 엄청 보내오면서 살빼라고 하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는 반찬을 보내줄 테니까 그거 다 먹고 살찌면 다 니 책임이라는 걸까? 그건 나에게는 '무책임'으로 보였다. 정말 자식이 살을 빼기를 원했다면 그럴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이 맞는 거 아니야? 먹을 건 다 먹으라고 보내면서 운동하라고 가르쳐 주면 살이 잘도 빠질 것이다 아마....
여름이 되어 얻었던 교훈은, '역시 난 섞일 수가 없어.'
그분이 주도해서 갔던 제주도 여행에서, 합격하고 난 후 처음 들었던 "군대나 가라."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네가 그만큼 능력이 안 되잖아? 지금도 우리 기준에 있어서 기본도 안 되고 능력도 안 되고. 네가 무슨 직장인이야? 애새끼지!"
그랬다. 모든 건 내가 처음 불합격했던 2009년 1월 2일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 난 뭐든 해도 바보인 그런 자식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합격을 해도 난 불안한 존재고, 군대를 가도 불쌍한 존재고, 전역을 해도 챙겨주지 않으면 그냥 죽어버리는 그런 존재가, 나였다. 바보같이 난 그걸 29살이 되었던 때에야 깨달았던 것이었다.
설 연휴 때의 생각이었지만 '그렇다면 내가 아무리 변해도 나는 불쌍하고 바보 같은 아들이라는 걸까.... 아무리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해도 용서받지 못하는구나....'
결심했다. 두 번 다시는 휴가가 있어도 절대 본가와는 보내지 않겠다고.
그리고 가을, 겨울에도 직장 내에서 구성원들의 작태는 여전했다. 더 열받았던 건, 자기들 잘못까지 내 잘못으로 떠넘기는 것. 모두들 나만을 몰아세웠다, 구성원들은.
'네가 잘못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라고 하는데 난 '인간의 됨됨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바뀌는 경우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본가에서 매주 무조건 전화할 것을 강요받은 이후로 더욱 그랬다. 이건 집이, 가족이 아니었다. 또다른 군대였다. 사람이란 거, 정말 안 바뀌는 것이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관리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도 있고 해서 난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려는 준비를 서둘렀다. 평생을 서자 취급받으면서 살 곳이라면 서자라고 불리는 곳을 탈출하는 것이 옳았다. 새로운 곳이라고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그 빌어먹을 놈들만 아니었다면...
설 연휴 때, 역시 내가 옳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전세를 구하는 데 나는 제외되어 있었다. 물론 내 돈을 쓰기에는 모자라서 어쩔 수 없다 쳐도, 왜 내가 살 곳을 구하는데 난 빠져있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마치 나는 전세 하나도 못 구하는 정신박약아라는 듯이. 내가 지금보다 개선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럴 것 같았다. 왜냐면 난 어려서 사회경험이 없으니까.
거기다 매일 했던 건 피부관리라고 마사지. 첫 인상이 좋으면 모든 게 잘 된다는 이유로.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지. 첫 인상보다는 능력이다!!! 그리고 피부관리하고 살빼야 선볼수 있다고 하는데, 어이없음. 애초에 키도 작고, 얼굴도 못생겼고, 애 같은 마마보이인데 어떤 여자가 미쳤다고 좋아한단 말인가?? "왜 이딴 놈을 선보게 했어!!!"라고 탁자 안부서지면 다행일 게다.
여튼 김천으로 옮긴 건 어제였다. 그나마 어제는 멀쩡했다. 확정일자라고 본가에서 온 것 빼고는.
20시 15분에 문을 열고 나가는 걸 보고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착해지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사람을 너무 믿으면 바보가 되어 버린다는 걸, 더 이상 불쌍한 아들 취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가 바로서야 한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흔적을 지우고, 본가와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었다. 대구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만나면 싸울 운명이라면, 그 운명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 아닌가.
그리고 사진 찍으면서 만나게 된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그냥 평소에 대하는 대로 시카마법사 aka PODAIM을 대해주세요. 사진을 그렇게 찍게 된 건 이 오류가, 빌어먹을 과거의 영향이 크기는 하지만 저와는 '맞는 사람'이기에 제가 웃고 지낼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이 글이 여러분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티스토리 시작하고 나서 참 길게 썼네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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