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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점 신사들의 이야기 - 4. 당신이 양복을 찾는다면

시카마법사 aka PODAIM 2019. 1. 21. 23:09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어린 이만술 선생에게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고, 그리고는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겪으면서 어느새 우리가 익숙한 노년의 이만술 선생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본 노년의 이만술 선생의 첫 장면 중 기억나는 장면은, 엄마가 일나간 사이에 아이를 봐줬던 모습이다. 맙소사,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어떤 엄마가? 그런데 보면 알겠지만 이미 그런 적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것은 뭘 의미할까? 그만큼 월계수 양복점에, 이 엄마는 많이 찾아왔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트로트 가수가 되었던 성태평도 마찬가지다. 인터뷰에서 성태평은, 자신은 월계수 양복점의 양복만 입는다고 한다. 물론 이건 사위로써 당연할 수도 있겠다만, 사위가 아니더라도 말이 달라졌을까?


두 가지를 보면서 생각한 것은, 양복을 찾으러 브랜드만 우리는 찾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세탁소를 보자. 우리가 드라이클리닝할 일이 있어서 산 넘고 물 건너 유명 세탁소를 찾던가? 또다른 예로, 우리가 물건들을 사기 위해 대형 마트만 가던가?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건 왜 그럴까?

사실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오고 싶어하게 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1회에서의 엄마는 딸을 봐달라고 그랬을 것이다.


민효원이 강태양에게 반한 것도 그러하고, 이동진이 나연실에게 반한 것도 그러하다. 네임드도 브랜드도 아님에도. 또한 배삼도와 복선녀도 그렇다. 아무리 말썽 많게 결혼했다 하더라도, 배삼도가 천하의 이만술 선생의 제자였으니 그 솜씨라면 고관대작과 결혼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도 살아가지 않던가.


그렇기 때문에 별 이유는 없다. 오고 싶어하게 하는 가게고, 사람이다. 그러니 여전히 찾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월계수 양복점은. 비단 드라마에서만이 아닌,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