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F: magic diary/퍼스지 여름의 서

공사에서 해사까지 2. 국제시장이 그런 거였어????

시카마법사 aka PODAIM 2015. 8. 11. 22:20

<국제시장>이라고 영화가 있었다.

처음에 예고편을 봤을 때는 독일로 가는 간호사 얘기가 나오길래, '아, 흔한 3공 이야기겠군. 확인되지도 않은...'이라고 생각하고는 금세 관심을 접었는데,

본래의 국제시장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다!!!!!

 

오늘 UN 평화기념관에서 들었던 국제시장 이야기에 따르면,

국제시장이 생겼던 곳은 부산이라고 한다. 한국 전쟁 이후에. 그렇다. 한국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말이다!!

당연히 부산에는 많은 피난민들로 인산인해. 그래서 이 피난민들은 집에 들어갈 힘도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판잣집. 지을 수 있는 재료라면 뭐든..

국제시장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났다는 것이었다.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뭐라고 팔아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 사람들은 심지어 밀수품, 미군 보급품, UN 원조물자까지 팔아서 살았다고 한다. 사실 대륙봉쇄령 당시의 러시아를 생각하면 쉽다. 아무것도 못 먹는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겠는가?

 

문제는 1953년의 국제시장 대화재가 배경이었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그걸 판잣집 철거에 악용했고, 정부는 후원금을 삥땅쳤고, 화재복구는 피난민들 탓이라는 듯........

그나마 다행인(?) 건, 피난민들에게 새로운 주거지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2009년의 용산 참사와는, 그나마 0.000001% 다른 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형성되었다는 마을에 대해서 들었을 때 상당히 충격이었다.

가야역 근처에 있었던, 고무공장 때문에 그나마 먹고 살 수 있었다던 당감동의 함경도 마을,

공동묘지 위에다 집을 짓고 살았던, 심지어 묘비도 계단으로 해야 했던 아미동 마을,

소 검역소 자리에다 생겼다던 우암동 마을......

 

정말 처절했다는 것을, 사례를 듣고 또 알았다.

악단 따라다니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남편 때문에 시아버지가 줬던 재봉틀로 장사를 하면서 살고 있다는 할머니. 이 할머니는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살 수 없었을 거라면서....

그리고 배추 들고 오빠가 협박해버려서 시집 갔는데 남편은 죽고 자식은 평생 환자라 불행 속에 살고 있다던 동생도..

 

밀면과 돼지국밥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밀가루를 많이 배급받았기 때문에 밀가루를 팔기 위해서 구포에서부터 시작했다던 밀면과,

순대국밥을 팔던 피난민들이 순대가 없어서 살코기를 넣어서 끓였던 돼지국밥도..

 

이방인처럼 지내면서도, 처절하게 살아왔던 그 사람들에 대해서, 굳이 말로 해야 할까?

그래서 시카마법사 aka PODAIM은, <국제시장>의 가치에 대해서 폄하했던 것에 대해서 깊이 반성한다.

왜 대작인지는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냥 대작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UN 묘지를 참배한 것과 UN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것도 모두 묻혔다, 이 국제시장 이야기에. 그만큼 충격이었기에.

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었던 특강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