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F: magic diary/1월의 '대의' 16

두 번째, 10일 - 10. 다시 혼자냐 아니냐

다시 짐을 싸려 할 때 묘했다. 다음 주에는 다시 출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휴가가 많으면서 왜 그러냐 하겠지만, 내 직업은 사람을 잘못 만나면 그만큼 고생인 것이니까.그렇게 해서 빨래한 것들을 겉옷은 빼고 파우치에 넣으니까 거의 차 있었다. 그리고 가방에 넣고 메니까 엄청 무거웠다. 그럴 거라고는 생각 안했는데.... 아침은 장조림이었다. 그리고는 위로 올라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 때, '아, 합반이랬지.'그래서 교원대에서 처음 들렀던 1층으로 가니까 다들 있었다. 이 강의는 글쎄...... 기억은 잘 안 났다. 그럴 만도 한 게, 유물에 대해 의문을 가질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그랬다. 그런데 강의는 10시 50분에 끝났는데 수료식은 11시 40분에 있었다. 대체 왜???..

두 번째, 10일 - 9. 시험까지 끝나고, 마지막 밤에

오전에 있던 강의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였다. 그 시초가, 항복이라 생각했던 옥음방송부터였다는 것을 알고 엄청 놀랐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에 '나 졌소'라고 대놓고 말할 국가원수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만은.... 분명히 이용가치가 있는(극우 입장에서) 것은 확실하였다. 새역모는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 거고, 언어영역 수준으로 말하는 걸 보면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교과서 고시들 교안에도 올려주시지 ㅠㅠㅠㅠㅠ 교안은 폼이 아니잖아요 ㅠㅠㅠㅠㅠ 어떻게 왜곡으로 변해갔는지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어찌보면 다를 바 없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응? 무슨 소리냐고? 군대는 무조건 좋은 것, 정부에 대항하면 무조건 빨갱이 그런 식이었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당파성론까지도. ..

두 번째, 10일 - 8. 왜 급질문인데요??

오늘은 밥 먹으러 나가려고 하니까 헉!! 볼펜이 없었다!!!! 분명 어제 군산 갔을 때 끼워놨는데!!젠장, 젠장..... 하긴 내 운빨이 그렇지......(아까 인스타 보고 확실히 느낀.....) 다행한 건 오전 강의는 정부 수립 이후의 역사였는데 워낙은 현대사 중에서도 관심있어했던 쪽이라 이해가 쉬웠다. 웬만해서는 지금의 팩트에 대해 부정할 수 있을 수가 없으니. 문제는 뭐냐 하면, 이승만 정권에 강의 시간의 절반을 투자했다는 거..... ㄷㄷ.... 왜냐면 현대사는 우리가 흔히 결말이라 하는 6월 항쟁 이후에도 할 말들은 엄청 많기 때문이다. 전대협-HCY로 이어지는 학생운동사와 민주당계 정당들의 이합집산, 6.15 공동선언, 누가 뭐라 해도 역도의 수괴의 통치는 빠지면 안 되지. 그런데 쩔수 없는 ..

두 번째, 10일 - 7. 군산에서

오늘은 군산으로 체험이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버스에 올라서 갔다. 그런데 밴드에서 무슨 보고서라면서 받았는데(LTE인데 한글 어플 깔아야했던... ㅡㅡ) 열어보니까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뭐하라는겨????이런 의문은 도착했을 때 풀렸다. 처음에 도착한 곳은 근대역사박물관이었다. 먼저 봤던 것은 군산항의 모습이었는데, 일본인 마을과 조선인 마을이 엄청 대조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당연히 항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뻔한 일이고..... '그렇군, 군산항에서 있었던 일을 가지고 쓰면 되겠구나.' 그래서 정미소에서 있었던 미선공들이나, 미두장(쉽게 말하자면, 쌀을 가지고 투자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장이라 생각하면 된다.)에서 쌀을 투자하거나 시세를 맞추려고 했던 사람들, 은행이랑 세관을 중점적으로 봤다. 물..

두 번째, 10일 - 6. 평범한 이야기들

오늘은 6시 15분에 일어났다. 왜냐면 오늘 새벽에 집에 왔기 때문에 빨래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시겠지만, 지금 안해놓으면? 금요일까지 묵혀 두어야 한다는 소리.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먼저 빨래부터 세탁기에 넣었다. 씻었을 때는 세탁은 끝나 있었다. 그래서 행거에 걸고, 밥 먹고 하니까 8시 15분.가져갈 건 노트북 가방 하나라(그것도 무거웠지만)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8시 40분 대전행 버스를 타고는, 다시 청주로 가는 버스를 탔다(그런데 선착순이었어....). 청주에서 타야 할 버스는 513번. 거기다 시간제라 시간을 잘 맞춰야 했다. 다행히도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했고, 30분은 걸릴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빠르게 가서 15분 후에 교원대 중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

두 번째, 10일 - 5. 1주차, 그리고 귀환

오늘 일어나서 밥 먹고 나서 했던 것은 짐을 싸는 거였다.왜냐면 함인당은 매주 금요일 오전까지만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워낙은 많은 옷들을 들고 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부피를 줄여야 했다. 그렇게 해서 옷이랑 속옷만 해도 파우치에 꽉 찼다. 그래서 공유기는 들고 가야 했고... 그렇게 하니까 작은 파우치랑 가방 하나만 남게 되었다. 이번 강의는 해방 이후부터 정부 수립에 대한 것이었다.여기서 왜 '해방'보다 '광복'이란 말을 쓰는지에 대해서 웃지 못할 사연을 듣게 됐는데, 이유인즉슨 북한에서 '해방'이란 말을 많이 써서 그렇다나;; '인민'이랑 같은 맥락이었다.그 중 자세하게 나온 것이 모스크바 3상 회의였다(신탁통치로 떠오르는 그거 맞다;;;;). 그것도 1시간을 쓸 정도. 사실 그럴 수밖..

두 번째, 10일 - 4. 평범한 주말 전야

이번 강의들은 대체로 평범했다. 보통은 상식선이어서 그런 걸까? 사실 근현대사에서 제일 치열한 파트는 바로, 해방 이후인 거니까. 그래도 1930년대 독립운동 이야기는 해주지... ㅠㅠ그리고 마지막 강의 때 동아시아에서의 역사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는 많았는데 정작 어떻게 현장에 돌아가 말할 것인지는 거의 20분밖에 이야기 안했다. 전체 2시간 동안.무슨 NGO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그건 당연히 현장과도 연계가 되어야 쓸모가 있는 거고. 내가 이제는 동업자들의 연대에 기대를 안 거는 것처럼. 그러고보니 밴드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비슬산이니 덕유산이니 무슨 꽃들 보여주고, 오늘 공연 있다거나 탁구 같이 치자 그러고.....그런데 그거 2주 후에도 그렇게 할 건가? 그리고 주말 전이다 보니 세탁기를 많이 ..

두 번째, 10일 - 3. 기억들이 다시 하나로

첫 번째 강의는 동학 농민 혁명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예전에는 그냥 지나갔던 일들이 상당히 기억되는 느낌이었다. 여러 삽화들과 함께.혁명의 시작이 고부 농민 봉기가 아닌 무창 봉기라는 것, 동학 농민 혁명이 왜 혁명인지(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가치들이), 그리고 청일전쟁이 왜 중요한가도 듣게 되었다. 두 번째 강의는 개항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1873년 이후로 있었던 여러 개항에 대한 것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아! 대원군의 치세와 임오군란은 빼고.뭣보다 목소리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되었다. 너무 쨍쨍 울리는 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애교는 애교대로 부리고 도움은 전혀 안 되니까. 세 번째 강의는 여러 사진들을 보여줬다. 현장에서는 비주얼이 그만큼 먹히니까. 그런데 또다시..

두 번째, 10일 - 2. 회식이 필요없는 이유

지난 주에 했던 RS는 50명은 됐을 것이다. 이번에는 25명이라 혼자 앉기에는 좋았다는 것, 그것이 장점이었다. 뭣보다 이러한 RS의 끝을 봤던 나였으니까. 첫 번째 강의는 우리가 쓰는 교본들의 내용에 대한 것이었다. 그 내용이 왜 교본에 나오는지, 그리고 또다른 기관들에서는 이 교본이 어떻게 서술되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보는 내용들이 실제와 맞는지 아닌지.여기서 나의 바닥이 드러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에 대해 내 예전 지식말고는 끄집어낼 게 없었다. 젠장, 지금까지 내가 헛살아왔나? 왜 이렇게 바보같냐고 ㅠㅠㅠㅠㅠㅠ그 때 환생해서 더 똑똑한 사람으로 태어나야 했나.... 그렇게 생각되었다. 너무 바보 같아서. 뭐? 너무 극단적이라고? 그러면 어떡해. 그 때마다 2009년 1월 2일이 생각나는..

두 번째, 10일 - 1. 신의 한 수, 또 하나

어제부터 버스를 타야 하는지 기차를 타야하는지 고민했다. 왜 그런가 하면, 거리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면 당연히 청주시외버스터미널로 도착하고, 기차를 타면 오송역이 가까웠는데 당연히 짐들을 다 들고 버스를 탈 수는 없었으니까, 결국은 택시인데 오송역이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결론은, 8시 20분에 일어나서 8시 40분까지 버스를 타야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해서 김천에서 오송역으로 환승하는 걸 예매했는데 9100원이었다. 이번에는 가방이 3개였다. 골때리는 건 옷이랑 속옷들, 양말들 더 가지고 와야 했다는 거지만.... ;; 하여튼 그렇게 자주 민주 통일교육의 힘찬 선봉, 한국교원대학교에 도착했다.국제연수관에서 등록했을 때 책들이며, 거기다 나오는 물건들도 많았다. 보니까.... 수건이랑 보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