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B: double side

2020년 이야기 - 그 처방전은 언제 완성되는 거요?

시카마법사 aka PODAIM 2021. 1. 21. 22:55

보통 이런 결산 이야기는 반기마다 한 번씩 쓰고는 했다. 그런데 작년에는 아니었다. 휴가가 상대적으로 짧아서 그런 것이기는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힘들었다. 아니, 힘든 거야 직장에 있으면서 거의 빠진 적이 없다만 거기에 추가되어서 하나의 요소가 더 생겼다. 그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설명하기로 하겠다.

 

2월에 직장을 옮겼다. 작년에 언급한 것이지만 재작년에 맡았던 그 빌어먹을 보직 때문에 예전 직장에서는 더 있다간 사이가 더 나빠질 것 같아서였다. 새로운 직장은 집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거의 금방이었다. 갔을 때 기관장이란 양반이 이상한 친절을 발휘해서 같이 갔던 거 빼고는.

그래서는 처음에 내 자리는 메인 사무실이었다. 부기관장이 항상 상주해 있는. 당연히 부담이라 차악으로 수석관이 있던 사무실로 옮겼다. 그리고는 2월이라 했으니 알 것이다. 코로나 19가 터졌던 것이었다.

내 직장이 코로나 19에 민감했던 직장이기도 했기 때문에 최소한 5월까지는 구성원들 볼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원격으로 업무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그것이 나에게 엄청난 독이 될 거라고는 누가 생각이나 했던가?? 그건 구성원들이 오고 나서부터 더 그랬다. 이것저것 한 것은 많은데, 사소한 말에도 상당히 민감해해서는 멍때리고..... 사실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재작년의 빌어먹을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내가 <하나뿐인 내편>의 금병할매처럼 치매를 겪거나, 자동차에 머리를 박아버리지 않는 이상 어떻게 잊어?

 

그런데 그 와중에 부담스러웠던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수석관이었다. 그나마 나은 건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고 적극적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 수석관들과는 다르게. 그건 인정하는 바다. 문제는 바로 그거였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에게 계속 이야기를 하기는 하는데 확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던 거였다. 불행하게도 나의 상황은 뭔가 확 달라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뭔소리냐면 <여자를 울려>의 강진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만큼, 이건 말을 하긴 하는데 뭔가 깔짝대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사람은 기관장이었다. 코로나 19 때문에 보통 내가 업무 때문에 쓰는 사무실은 거의 비워두고 있었는데 그런 사무실에 내가 주인이니 뭐니 강조하고는 구성원들에게 청소를 시켜서 책임감을 가지게 하라는 것이었다. 난 너무 어이가 없었다. 청소를 통해 뭔가가 달라진다면 모르겠지만 내가 그 사무실에서 했던 건 청소하라고 계속 이야기했던 것이었다. 쉬지도 않고!! 전혀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청소만 하면 달라진다니..... ㅋ

 

그렇게 해서 뭔가 부담스러운 사람들과 틈만 나면 찾아오는 PTSD 때문에 전반기는 순식간에 힘들어졌다. 그리고는 11월이 되었다. 그 때는 대행사가 있어서 그 때문에 다들 신경이 장난 아니었다. 그런데, 그 대행사에 대한 구성원들이 화근이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단지 내가 잘 안 건드린다는 이유로 날 만만하게 봤다는 것이었다. 내가 안 건드렸다고? 내가 왜 그랬는데, 만약에 내가 건드리면, 뭐든 때리고 날리고 부숴버릴까봐 그런 건데. 어쨌든 간에 그 대행사 때문에 수석관이랑 많이 이야기했다. 그래봤자 순서 바꾸고 그런 거였지만. 그렇게 해서 대행사를 하기는 했는데 새로 온 부기관장 말에 의하면 목표 달성은 실패. 그러면서 말했던 것은 너같이 2년을 평균으로 돌아다니다가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면서, 그리고는 바뀔 의지가 있어야 바뀌는 것이지 PTSD 타령만 하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바뀌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말하면 내가 죽일 놈이고 내가 게을러서 등신같이 말아먹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부기관장이 나에게 접근한 적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부기관장 말로는 너무 바빠서 나 신경쓸 시간도 없다고는 했다. 그런데 어쩌라고. 그렇게 말하면 응급실은 왜 있는 건데? 이건 말만 툭 던져주고 멋있는 사람 역할만 하고는 그냥 방치한 거 아닌가? 정작 나보고는 구성원들 방치한다고 했던 양반이? 뭐? 나이의 차이라고? 천만에! 노인들도 방치당하면 그건 학대다. 시급한 사람을 말만 딱 하고는 놔두는게 학대가 아니고 뭔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더 웃긴 건 그 시점에서 수석관이 한 말이었다. 내가 능력자인 줄 알고 있던 거였다는 것이다. 뭔소리냐면, 원격업무 때는 내가 잘해서 그렇다나? 그게 대면업무 때는 망가졌고..... 그걸 듣고는 또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원격업무를 할 때는 시나리오처럼 80% 할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마냥 제어가 가능했다. 그리고 서로 안 보기 때문에 PTSD니 뭐니 따질 필요도 없었고. 차라리 원격업무 때 철저히 망가졌다면 뭔가 체계적으로 케어라도 받았을 텐데 말이지.

이게 더 심각한 것이, 난 처음에 수석관을 봤을 때 내 과거에 대해 100%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수석관은 원격에서의 내 모습만 보고 전혀 신경 안썼다는 것이었다!! 부기관장 말마따나, 내 과거는 아주 심각한 것이었다. 환자로 치면은 죽기 일보직전의 환자인 셈이었다. 그런 내가 과거를 말했다는 것은, 환자가 자기의 증상을 아주 상세히 진술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환자의 증상을, 의사라는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괜찮다는 이유로 무시해 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언제 죽나 그런 사람에게!!!!!!!!!!!!!! 그것도 충분히 능력이 되는 의사가!!(사실 종 가지고 오면서 해보라고 이것저것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역시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당신이라면 그런 의사를 믿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대행사 이후로 다시 절반은 원격업무가 되게 되면서 그 때부터는 아예 숨어 지냈다.

사실 직장에서 그렇게 도움도 안 되는 인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같은 인간임에도 반겨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난 다가갈 수가 없었다. 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아주 쉬운 것이고. 그리고 기관장이란 사람은 계속 모여서 뭘 하기를 좋아하고, 영양가도 없는 것을. 힘든 것 투성이였다.

그렇게 해서 오늘 연말정산까지 해서 휴가 동안에도 직장에 오는 건 끝났다....... 가 아니고 2월 중순에 이번 년도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2주 동안 직장에 오라는 것이었다, 구성원들 오기 전에. 이것도 맘에 안 들었다. 대체 2주 동안 있어서 바뀌는 게 뭔가. 뭐? 그 정도 준비도 없이 뭘 잘하기를 바라냐고? 입장을 바꿔서 그렇게 준비했음에도 "넌 죽어야 해!!"라고 작년에 이어 계속 그런 소리만 듣는다면 얼마나 죽고 싶을까? 그러니 2주 동안 뭘 한들 무슨 소용인데? 그냥 잡아 가두려고 그러는 거 아니고?

 

그리고 또 묻겠다. 앞서 말한 기관장, 부기관장, 수석관 이 사람들이, 정작 내가 진짜 죽고 싶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더 이상 못 버텨서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까? No~~~~ 오히려 등 떠밀겠지. 앞서 말했듯이. 내 빌어먹을 과거를 듣고도 전혀 반응도 없던 그런 양반들이지만. 세 양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그런 유형의 사람들의 진심이 어떤 것인지 이미 파악하고 있으니. 그래서 나와 비슷한 직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초년생 때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냥 망했다고 생각해라. 그만큼 내 직장은 처음에 너무 중요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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